산행

지리엔 가을이 내려오고 있었다(하봉 - 써레봉)

김의수 2010. 9. 25. 22:07

 

  

 

지리엔 가을이 내려오고 있었다.

 

 

 

언   제 : 2010. 9. 24 (금)

어디를 : 윗새재 - 쑥밭재 - 청이당 - 하봉옛길 - 하봉 - 중봉 - 써레봉 - 치밭목산장 - 윗새재

누구와 : SOLO

머문시간 : 14시간

 

 

 

사랑비 / 김태우

눌러주세요 ^^*

 

 

지리산에 갈때는 언제나 맘 설렌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세시 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두시간 정도 잤는가 보다.

모자란 잠은 지리에서 점심먹고 보충하면 되겠지... 뒤로 미룬다.

 

4시 반 어둠을 가르고 지리산으로 차를 몬다.

차 안은 구어 만든 CD에서 모차르트곡이 울려 퍼진다.

추석을 지난 휘엉청 밝은 보름달이 서쪽하늘에 걸렸다.

차를 세워 보름달을 카메라에 담아 보지만 실력미숙이다.

길가 코스모스가 카메라 불빛속에서 미소 짖는다.

 

아침이 밝았다.

6시 15분 윗새재 금줄을 넘어 조개골을 스며든다.

맑은 공기와 길옆 계곡물소리에 온몸의 세포들은 힘차게 깨어난다.

오늘의 켄셉은 "옆도 뒤도 보면서 천천히 걷자." 다.

 

 

 

철모삼거리에서 청이당 가는 길 고도 1000m지점 계곡에 나를 내려 놓는다.

아침햇살은 나무사이로 내려와서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미소짖는다.

담배를 참아 볼려 하였으나 바람과 물소리 새소리 하모니에 무너지고 만다.

 

한시간 산죽과 씨름하고 물도 없는 속칭 샘터삼거리(쑥밭재)를 뚫고 동부능선 으로 나왔다.

아직은 드센 산죽이 부담스럽다.

간간이 거미줄이 얼굴에 걸려서 손으로 걷어 내지만 애써 만든 거미들에게 미안스럽다.

다시 15분을 걸어 청이당고개에 이른다.

이 길을 다시 오면 계곡을 고집하며 오를 일이다.

 

청이당고개

 

 

고도 1250m 정도의 청이당은 옛날 청이당이라는 당집이 있었다는 설에 의해서 그렇게 불려지는 것 같다.

청이당고개(아래쑥밭재)에서 1분거리에 계곡이 있다.

태극종주하는 꾼들에게 식수공급원이다. 나도 수통에 물을 채운다.

오늘의 또 하나 테마는 '하봉옛길'을 걷는 것이다. 처음 걷는 길이다.

고개에서 내려와 100m 윗쪽으로 가다가 계곡을 건너면 길은 열려있다.

 

청이당계곡

 

 

하봉옛길은 계곡을 오른쪽으로 끼고 간다. 돌길이 어느 정도 있으나 문제가 아니다.

계곡이 끝나고 걷는 하봉옛길은 계속 이어진다. 원시미가 뿜어져 나오는 이 길은 편안하고 유순하다.

우아하다 못해 감동이다.

카타르시스가 자꾸 끓어 오른다. 내가 여기 있음에 행복하다.

눈이 내린 겨울날 다시 와야겠다.

 

하봉옛길

 

 

단풍취(게발딱주)

 

 

마암(馬巖)에 들려보기로 한다.

몇년 전 겨울밤 부산산꾼들이 야영을 하면서 절벽 아래서 불을 피어

얼었던 바위가 떨어져 압사 사고가 있었던 장소다.

낙석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등로의 왼쪽 뚜렸한 길을 따라 100m 거리에 있다.

행복한 지리산에서 영면하시라 빌어주고 되돌아 나와 길손은 길을 간다.

 

마암

 

 

길 주변에 버슷이 많이 보였으나 알고 있는 것이 몇 안되는지라 간섭하지 않았다.

청이당터에서 한시간 반을 걸어 다시 동부능선에 닿았다.

날머리는 하봉과 국골사거리 중간쯤 되는 것 같다. 미역줄기가 입구를 막고 있다.

하봉까지는 30분 거리다.

 

날머리

 

 

지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하봉이다.

지리에서 처음 만난 상고대가 하봉능선이다.

상고대가 피어난 늦은가을... 몽환적이던 하봉은 아직 가슴에 시리도록 남아 있다.

하봉에는 내가 좋아하는 구상나무가 많다.

바위사이 억척스런 돌양지가 앙증스럽게 맞이하는 곳이 하봉이다.

 

하봉은 지리 최고의 조망처다.

중봉이 지척이고 천왕봉에서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을 거쳐 노고단 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이 눈 앞에 펼쳐지고

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손짓하는 반야봉이 아련하다.

만복대에서 바래봉 덕두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도 보인다.

산청독바위 새봉 도토리봉 웅석봉 달뜨기능선이 보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신계곡 칠선계곡 국골이 아래로 내려 보인다.

하봉능선을 걸으면 무아지경에 빠진다.

 

구상나무

  

 

국골

  

 

가을이 내려 앉았다

 

 

이끼

 

 

중봉, 천왕봉, 제석봉

 

 

 ...그리고, 구름

 

 

대륙폭포골과 초암능선 - 사진 중앙이 대륙폭포골 좌골이다

 

 

작년 이맘때 국립공원 직원 호위속에 칠선계곡을 오르긴 하였으나 2% 부족하였다.

가까운 시일에 대륙폭포골 좌골을 올라 초암능선을 타야겠다.

영랑대에 올라서니 이제사 등산길이 머리속에서 정리된다.

아직은 가본 곳보다 못가본 곳이 더 많은 지리다.

 

 

 

 

 가을

 

 

하봉중에서도 제일 좋은 곳이 영랑대이다.

대여섯 번은 오른 것 같다.

힘겹게 오른 영랑대에 텐트가 한동 보인다.

개의치 않고 주변풍경 사진을 찍고 있는데.....허걱!!

인기척에 모령의 40대 중반의 여자산객 한 사람이 텐트에서 나온다.

 

텐트에서 나온 산객

 

 

산중에서 갑자기 여인과 맞닥뜨리니 어색하다.

깊은 생각에 빠져 명상하는 듯도 하고 황홀한 지리산을 만끽하고 있는 듯도 하다.

사진을 찍고 조망을 하느라 10여분이 흐른 후 내가 먼저 말을 건낸다. 말씨가 서울말투다.

어제 와서 이 곳에서 잤고 두류능선을 올랐으며 지금은 함양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고 말하였다.

지리99는 모른다고 하였다.

잠시동안의 대화였지만 지리내공이 나보다 훨~ 높아 보인다. 지리열병이 중증으로 느껴진다.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연 허락을 받지 못했다.

쉬고 싶었던 영랑대였지만 행여 방해될까봐 조용히 길을 떠난다.

 

300m 정도 떨어진 또 다른 전망대로 간다. 점심상을 편다.

김밥 2줄, 반찬 1통, 쐬주 한 잔, 커피 한 잔이 전부지만

천왕봉을 바라보는 하봉의 식탁은 세상에서 최고다.

따사로운 햇살과 가을 뭉개구름이 반찬이고, 지천의 야생화와 지리공기는 디저트다.

 

세상 최고의 식탁

 

 

돌양지

 

 

칼잎용담

 

 

산오이풀

 

 

산부추

 

 

투구꽃(옛날 궁궐에서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 하였던가?)

 

 

점심 먹고 쐬주 마시고 커피 끓여 마시고 나서 어젯밤 모자란 잠을 청하려 하였으나 시간이 여의치 못하다.

문득 영랑대를 건네보니 아까 그녀가 보인다.

멀어서 희미해진 그녀를 카메라로 당겨보니 바위에 엎드려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지리산에 텐트치고 1박2일 유한다는 것...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것을 그녀는 하고 있는 것이다.

부/럽/다.

지리와 그녀는 동화되어 하나되어 있었다. 나도 하리라.

 

잠시 후 다시 돌아본 그녀는 추웠는지 옷을 바꾸어 입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영랑대의 그녀는 나에게 충격이었고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다시 발길 돌려 산길을 간다.

 

바위군 뒤 절벽의 영랑대에 그녀가 점으로 보인다

 

 

망중한의 그녀(줌)

 

 

차마시는 그녀(줌)

 

 

서쪽으로 반야봉이 구름아래 아기궁뎅이 만들어 놓았다. 천왕봉 위에도 뭉게구름 노닌다.

혼자 걷는 산길은 호젓하다. 번민도 걱정도 없다.

오늘은 참 느리게 걷는다. 이것이 오늘의 컨셉이다.

누군가는 산을 혼자 걷다보면 어느 순간 무념한 상태에 빠져서 말이 없어지고, 말이 없으니 생각이 없어지고,

생각이 없으니 내가 사라진다 하였다.

여러명이 함께 산행하는 것도 좋으나 대체로 나는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하여 간혹 나도 나를 잊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때로는 좋을 것 같다.

 

반야봉

 

 

하봉(1781m) 중봉(1874m) 천왕봉(1915m)

 

 

하봉헬기장과 중봉

 

 

중봉 가는 길에서(두류능선과 창암능선이 아래에 보인다)

 

 

중봉 가기 전 큰 나무 옆에 진주산업대학교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문비나무'라고 팻말을 세워 두었다.

구상나무와 가문비 나무는 언듯보면 구분이 어렵다. 자세히 보아두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 가문비

 

 

느리게... 아주 느리게 걸어서 중봉에 닿는다.

중봉에는 가을이 내려오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오는 중봉이다.

그날도 새벽에 달려와 아침을 먹고 북쪽 부드러운 풀섶에서 자리 깔고 한시간 잔적이 있다.

 

천왕봉이 앞쪽에서 우뚝하고

황금능선은 써레봉을 머리로 거대한 한 마리 용이되어 중봉을 향하여 용트림 하고 있다.

통신골을 올라 천왕봉 중봉을 거쳐 써레봉에서 중봉골(마야계곡)을 걷는 숙제를 또 만든다.

 

오늘도 중봉엔 사진작가들이 진을 치고 있다.

뜻밖에 반가운 산님을 만난다. 고교 후배들이다.

고성에서 교편 잡는 후배님과 중산리에서 대형편션을 운영하는 하하봉후배님이다.

한명은 종주중이고 한명은 천왕봉 올라 중산리로 하산한단다.

술 한 잔 나누지 못해 여간 서운한게 아니다.

사진작가 한 분이 자청하여 사진을 찍어준다

 

하하봉 후배, 나, 중학교선생님 후배

 

 

사진작가님들(진주 산악사진작가 치우 이재섭님의 근황도 알려주었다)

 

 

중봉의 추색

 

 

황금능선

 

 

지리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맑았던 하늘에서 뭉게구름이 다가와 천왕봉을 금방 덮어버린다.

말쑥하니 점잖하게 있는 지리보다 역동적인 지리가 좋다. 그래야 지리답지.

여름은 가고 가을이 내려앉은 중봉에서 바람과 구름과 함께 한시간을 보내었다.

 

 

 

천왕봉

 

 

구름이불 덮은 천왕봉

 

 

제석봉이 보이고 촛대봉이 보인다

 

 

산객은 이제 써레봉으로 향한다.

올해도 10월 초순이면 1800고지 윗쪽은 단풍이 절정이겠지.

아마 그때 중봉으로 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

언제나 지리 그대는 그 자리에 있으니 나는 성겁하게 마음 달이지 말자.

 

구상나무와 써레봉 - 멀리 달뜨기능선이 보인다.

 

 

써레봉도 가을로 채색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산청독바위 새봉 상내봉이 발 아래다

 

 

석위

 

 

천왕동능

 

 

 

 

 

남해바다 - 삼천포 실안 앞바다로 보인다

 

 

 

 

 

 

 

 

천왕봉과 중봉

 

 

산구절초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 몇가지 있다.

샛길 막는다고 고사목 베어 목책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그 중 하나다.

고사목도 엄연한 지리산의 한 부분이고 지리산의 주인공이다.

40년 전 지리산에 처음 왔을 때 제석봉의 고사목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특히 주목 가문비 구상나무의 고사목은 예술품으로 승화된다.

서 있는 고사목이건 누워 있는 고사목이건 썩어가는 고사목이건 그들에겐 의미가 있다.

 

지리산에 오는 산객은 고사목이 불편하다거나 보기 흉하다거나 지리산의 이미지를 흐린다고 말하지 않는다.

공단사람들은 고사목을 폐목으로 취급해서는 베어내 사람 다니고 짐승 다니는 길목 막음용으로 이용해 버렸다.

지리산에 대한 결례고 모욕이다. 참으로 무식 찬란한 행위에 서글퍼 진다.

그러한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야생화, 약초, 버섯 말살시키는 산죽은 왜 활용하지 못하였을까.

 

가을하늘과 고사목

 

 

 고사목과 바위의 앙상블

 

 

 바위취

 

 

황금능선과 중봉골

 

 

중봉골과 세존봉능선, 천왕동능

 

 

중봉에서 3.1km의 치밭목산장에서 다리쉼을 한다.

추석연휴가 끝나지 않아 산객이 많다. 민대장은 출타중이다.

윗새재 까지 4.8km의 돌길을 걸어야 한다. 5시 반이 되어간다.

산장에서 내려서는 긴 나무계단이 보인다.

 

치밭목산장

 

 

무제치기 폭포

 

 

어둠이 내려 온다

 

 

하산길 계곡에서 땀을 훔치고 무재치기폭포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는다.

여기는 보름이 넘어야 단풍들것다.

배가 고프다. 자유시간 2개로 땜방을 한다. 무릎에 약간의 신호가 왔으나 걸을만 하다.

날이 어두어 중간쯤에서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힌다. 돌길은 산객의 발목을 잡아 더디게  한다.

바빠 하지도 조급해 하지도 않았다. 무서워 하지도 않았다.

한시간 반을 그렇게 걸었다.

산길 가다보면 간혹 있는 일이긴 하나 권할 일은 아니다.

1km 남겨두고 나무사이로 언 듯 윗새재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반가워 걸음이 가볍다.

 

14시간 지리에 머물었다.

술이 고프다.

진주에 도착해 지인을 만나 얌념불고기에 쐬주를 마신다.

기분 짱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뽕 맞은 사람 마냥 황홀하다. 지리열병이 깊어가나 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 9. 26 아침에...